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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유럽

방구석랜선여행 :: 스페인 순례길의 노란화살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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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랜선여행 :: 스페인 순례길의 노란 화살표

 

 

 

살아오면서 꼭 한 번쯤은 순례길을 걸어보자고 생각했다가 3년 전 스페인 순례길에 다녀왔어요. 종교적으로 가고 싶었던 게 아니라 막연하게 가고 싶단 생각으로 떠났어요. 시작한 지 3일 만에 포기할 뻔했지만 무사히 완주를 했답니다. 시간 여유상 남들이 말하는 국민 루트인 프랑스길이 아닌 마드리드길로 걸었어요. 마드리드길은 마드리드에서 시작해 사하군에서부터 프랑스길로 합류하는 순례길이었답니다. 아마 제가 알기로는 순례길 중에서 가장 짧은 걸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프랑스길처럼 유명하지 않아 만만의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무척 힘든 길이 될 수도 있답니다. 프랑스길과 마드리드길을 쉽게 비유하자면 프랑스길은 고속도로 같고요. 마드리드는 시골 농작로 같았어요. 고속도로에는 중간중간에 휴게소와 졸음쉼터가 있지만 시골 농작로에는 오로지 밭과 논 밖에 보이지 않잖아요. 딱 이 표현이 적절한 것 같네요. 순례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여행을 7개월 동안 했었는데, 순례길이 7개월동안 한 여행 중에서도 기억에 오래오래 남고, 함께했던 남자 친구와도 자꾸 회자되는 곳 중에 한 곳이기도 해요.  2년 전 지오디가 순례길을 걸었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요.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저도 함께 옆에서 걸은 것처럼 열심히 본방 사수를 했었어요. 윤계상이 했던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바로 "어떻게든 걸어지는구나" 몇 말이 아닌 것 같은데도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말이었어요. 우리도 순례길을 걷고 숙소에 들어왔을 땐 정말 죽을 것 같았지만, 아침에 옷을 차려입고 배낭을 메면 또 어떻게든 걸어졌거든요. 그때 그 순간이 생각나기도 하고, 다 똑같은 마음으로 순례길을 걸었구나 하는 공감도 되기도 했고요. 스페인 순례길하면 여러 가지가 떠오르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바로 노란화살표가 아닐까요? 순례길은 다른 여행과 다르게 구글 지도를 보지 않아도 돼요. 노란 화살표를 따라가면 되거든요. 노란화살표가 길라잡이가 되어 우리는 산티아고까지 안내해줘요. 기계에 의지하지 않은채 오로지 노란화살표만 걷는 다는게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노란화살표에 의지를 많이 하고 있더라고요. 

 

 


 

 

처음 발견한 순례길 표시, 산티아고까지 575km가 남았다.

 

 

우리는 마드리드에서 출발하지 않고, 세고비아에서 출발했어요. 세고비아를 둘러본 후, 예약한 숙소로 가는 길이 바로 순례길이더라고요. 숙소로 가는 동안 노란화살표를 찾느라 눈에 불을 켜고 찾았지만, 노란 화살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비석이 눈에 딱 들어와서 봤더니 이것도 순례자들에게 길을 알려주는 하나의 표시였어요. 처음 발견한게 노란 화살표가 아니라 아쉬웠지만 우리가 앞으로 가야할 길이 575km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라 감정이 복잡 미묘했던 게 생각나네요.

 

 

 

보통은 표시석이 있어요
다양한 곳에 표시되어 있던 노란화살표

 

 

순례자의 길라잡이인 노란화살표는 보통 표시석이 마련되어 있지만 여의치 못한 곳에서는 다양하게 표시되어 있었어요. 돌기둥에도 나무에도 집 담벼락에도 심지어 바닥에 박혀있는 돌 위에도 노란화살표가 그려져 있었어요.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 산티아고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 표시하는 방식도 달랐고요. 갈리시아 지방으로 넘어갔을 땐 조개 모양과 화살표 모양은 항상 같이 있었답니다. 

 

 

 

순례자들이 직접 만들어 놓은 화살표

 

 

그리고 순례자들이 직접 만들어 놓은 화살표도 종종 볼 수 있었어요. 덕분에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안심도 되기도 하고요. 다른 순례자들을 위해 화살표를 만든 순례자의 따뜻한 마음도 느낄 수 있어서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았어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화살표가 망가져있다면 다시 고쳐주고 길을 떠나기도 했어요. 저 또한 망가진 화살표를 제대로 만들 때, 다른 순례자들도 이 화살표를 보면서 함께 힘내길 응원의 마음을 담아보기도 했답니다.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 100KM (좌) / 남은거리 100KM 인증샷 (우)

 

 

순례길을 걸으면서 가장 기뻤던 화살표는 바로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가 100KM라는 표시석을 만났을 때에요. 이 표시석을 만나기 전에 어느 순례자들인지 몰라도 가짜 100km 표시석이라고 낙서해놓은 게 있었거든요. 처음 가짜 표시석을 만났을 때 진짜인 줄 알고 기뻐했다가 가짜라는 걸 안 순간 어찌나 허무하던지.. 그러다가 만날 진짜 00km 표시석은 정말 기뻤답니다. 웬만하면 표시석이랑 인증샷을 찍지 않는데, 이것만은 안 찍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저희뿐만 아니라 다른 순례자들도 100km 표시석만큼은 인증샷을 찍어 서로서로 찍어주면 기념했던 것도 생각나네요.

 

 

 

 

Manjarin에서 구입한 화살표목걸이 (좌) / Villalon de Campos 알베르게 관리인이 선물로 준 노란화살표뱃지 (우) 

 

 

 

여행지에서 기념품을 잘 사지 않지만 순례길에서는 노란 화살표가 그려진 목걸이도 구입했어요. 구입한 뒤로는 여행내내 노란화살표 목걸이를 하고 다녔답니다. 그리고 마드리드 순례길에서 받은 노라 화살표 배지도 배낭에 항상 달고 다녔고요. 다른 순례자들처럼 조개껍데기를 달고 다니지는 못했지만, 비록 작은 노란색 화살표 목걸이와 배지였지만 우리도 순례자라는 걸 알릴 수 있는 표식이 있어 나름 뿌듯했었어요.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대성당

 

 

 

열심히 노란 화살표를 따라 도착한 산티아고 대성당! 막상 도착하니 아무런 감흥이 없더라고요. 0km 적힌 표시석을 보고 싶어 열심히 찾았지만 0km 적힌 표시석은 피스테라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0km 표시석을 눈으로 직접 봤더라면 가슴이 벅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거기에다가 산티아고 대성당이 공사 중이었고, 대성당 앞에는 한참 행사 준비 중이라 분위기가 어색해서 어서 자릴 떠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거든요. 순례길을 걸었다는 인증서를 받고, 산티아고 우체국으로 보낸 짐을 찾고, 길에서 만나 함께 밥 먹고, 이야기를 나눴던 순례자들을 마지막에 만나 다시는 언제 만날지 모르는 인사를 나눌 때야 이제 진짜 마지막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괜히 눈물이 나서 혼났어요.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고 헤어진 그때 그 사람들.. 지금 다들 잘 지내고 있겠죠??

 

 

 


 

처음 걸어본 순례길이라 무작정 앞만 보고 걸었어요. 그래서 더욱이 아쉬움이 많이 남아 다시 한번 걸어보려고 준비 중이었어요. 하지만 현실은 갈 수 없다는 거! 다음 순례자 길을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건강하게 지내보려고 합니다. 모두들 부엔 까미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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